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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초기 선교사들, 복음화·지도자 양성 힘써”교단·단체 2024. 11. 5. 19:51
‘에큐메니칼 선교 연구회’는 21일 서울 종로구 소재 연동교회(담임 김주용 목사)에서 ‘성공이 아닌 섬김’이라는 주제로 한국선교 140주년 기념예배 및 에큐메니칼 선교 세미나를 개최했다. ‘에큐매니칼 선교 연구회’는 미국장로교(PCUSA), 연합감리교회(UMC), 호주연합교회(UCA), 미국연합그리스도의교회(UCC) 교단이 대한민국에 파송한 목회자들이 결성한 단체다.
이날 행사에서 기념예배에 이어 에큐메니칼 선교 세미나가 열렸다. 제목은 ‘미국장로교 한국선교 역사의 기여-에큐메니칼 운동과 교육 선교 중심으로’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최영근 교수가 ‘미국장로교 한국선교회의 교육 선교’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최 교수는 “한국 기독교 선교사는 초창기 복음전도, 교육과 의료 선교를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미국 북·남 장로교의 교육 선교 전략은 ‘불신자에겐 전도하고, 신자에겐 교육하자’를 기치로 내세우며,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지도자 양성에 힘썼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 남장로회는 복음전도에 집중하는 미국 북장로회와 달리 복음전도, 교육, 의료 선교사의 비율이 골고루 분배됐을 정도로 교육 선교에 집중했다”며 “남장로회의 교육 선교를 이끈 사람은 윌리엄 린튼 선교사로, 남장로회는 교육과 의료를 전도의 영역에 포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1910년 이전까지 미국 선교부는 미션스쿨의 교육과정 구성을 주도했으나, 을사조약이 체결된 1910년 이후 일본은 사립학교 개정안(1915년) 등 조선교육령 개정을 통해 미션스쿨 내 성경교육과 예배를 금지하려 했다”며 “또한 미션스쿨에서 미국 선교부가 양성한 교사를 채용할 수 없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기도 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일제의 식민화 도구 중 하나는 교육이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교육 목적은 복음화였다. 교육의 목적을 근대화로 여겼던 한국민들의 염원을 반영한 당대 미션스쿨은 복음화 및 시민의식·자유민주주의 함양 등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일조할 지도자 양성이라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는 “미국 남장로교회는 ‘한국 사회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는 교육’이라며 소속 미션스쿨 10곳 중 2곳을 ‘지정학교’로 지정해, 인력·물적 자원을 투입하는 등 전문화를 꾀했다”며 “이는 세속주의자와 일제 천황 숭배자를 양성하는 데 국한됐던 일제 공립학교와의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미션스쿨에도 신사참배 강요의 물결이 닥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미국 북장로회 내부에선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폐교하자는 주류(사뮤엘 마펫·윌리엄 마튼 베어드 선교사)와 하나의 종교 형식으로 신사참배를 하면서 미션스쿨을 운영하자는 비주류(호러스 호턴 언더우드 선교사) 입장이 충돌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결국 미국 북장로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기독교의 원칙을 고수한 교육선교를 지향해야 한다며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폐교를 선언했다”며 “미국 남장로회는 이견 없이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기독교의 원칙을 지키는 한에서 교육 선교를 해야 한다며 폐교를 선언했다”고 했다.
그는 “1938년 미국 남장로교 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폐교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우릴 멈추게 하신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날이 온다. 그날을 바라며 멈춰진 이 자리에서 힘차게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며 “그리고 해방 이후인 1946년 11월 린튼 선교사는 한국에 복귀하며 쓴 편지에 ‘일제가 우리의 길을 막았지만, 하나님이 다시 길을 여셔서 선교를 시작한다’고 했다”고 했다.
특히 “미국 남장로회는 일제로부터의 강탈을 예방하고자 1924년 학교 재산을 남장로회 이름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했다. 당시 남장로회의 재단법인 대표는 타마자(John Van Neste Talmage) 선교사로 전시 체제에 돌입한 일제로부터 학교 재산을 양도할 것을 회유받았다”며 “하지만 이를 끝까지 거부한 타마자 선교사는 결국 투옥됐다. 1937년 남장로회 소속 미션스쿨들은 모두 폐교가 결정됐지만 소유권은 여전히 미국 남장로회가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방 이후인 1946년 미국 남장로회는 대한민국에 복귀하면서 당시 시가로 100만 불에 육박했던 학교 재산을 기초로 현재의 한남대학교를 세웠다”고 했다.
그는 “선교사들은 해방 이전 일제 치하 때 실행했던 중등교육 수준보다 더 높은 차원의 교육 선교를 새로 시작한 것”이라며 “선교사들이 신사참배의 강요에 무책임하게 도피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선교사들은 해방 이후의 미래를 내다보며 더 높은 선교사역을 추구하고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한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현재의 한국의 기독교 학교들도 굳건히 기독교적 원칙을 고수하면서 지도자 양성에 힘쓴 선대 선교사들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남대는 지역 내 한국교회 130개로부터 장학금 등 재정지원을 받았다”며 “기독교대학이 기독교 정신이 녹아든 수준 높은 교육을 이행하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다방면에서의 한국교회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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