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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는 것이 곧 은혜”
    교단·단체 2022. 4. 15. 11:22
    홍선경 목사 ©노형구 기자

    기독일보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연중 기획 인터뷰 ‘힘내라! 한국교회 시즌2’를 진행한다. 다섯 번째 주인공은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소재 ‘나무교회’ 담임 홍선경 목사(56)다. 홍선경 목사는 클래식음악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한 뒤 교회에서 집사로 생활하다 성경말씀에 대한 갈급함으로 신학을 시작해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홍 목사는 “나무마다 각자의 스타일과 습성이 다르다. 교인도 마찬가지다. 각자 하나님께 지받은 스타일이나 성향이 다르며, 나무교회는 이를 최대한 존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홍 목사와의 일문일답.

     

    -목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4년 간 음악춘추사라는 클래식음악 잡지사에서 전문기자로 일한 뒤 결혼과 육아로 그만두고 교회에서 집사로 생활하다 성경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생겨 당시 담임목사님의 권유로 신학을 시작했다. 그리고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100기(2004년)로 입학했다.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깊이 만났다.”

     

    -교회는 어떻게 개척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사역을 쉬고 있을때 성경을 가르쳐달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가족들이 자연스레 합류하면서 2014년부터 교회를 개척하게 됐다. 등록교인은 30여 명 정도다.”

     

    -목회에서 집중하는 바는?

     

    “소그룹 성경공부다. 성경공부를 원하는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모임을 조직해서 하려고 한다. 요즘엔 누가복음을 설교하고 있다.”

     

    -인터뷰 직전 주일예배에서 목사님이 설교하신 내용에 대해 간략한 요약 부탁드린다.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시므온에 대해 설교했다. 시므온은 주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보통 기다림은 수동적인 행위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능동적 태도가 담겨 있다. 즉 올 것을 믿고 소망하며 기다리기로 결단한 사람만이 기다림의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린다면, 온 세상은 주님의 위로로 가득 찼음을 느끼고 발견하게 된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로새서 1:16)처럼, 만유에 깃드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봄날의 햇살에서도 주님의 위로와 사랑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웃음).”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개척의 장점을 말해준다면?

     

    “개척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여기까지 왔다. 개척교회를 담임하면서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그 아픔을 통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고통을 알아갈 수 있었으니, 의미 있는 고통이었다. 목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부사역자 때와 담임사역자의 위치에서 양들을 돌보는 차원은 현저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나무교회의 정체성은?

     

    “나무마다 각자의 스타일과 습성이 다르다. 교인도 마찬가지다. 각자 하나님께 지음 받은 스타일이나 성향이 다르며, 나무교회는 이를 최대한 존중하려고 한다.”

     

    -신앙에 있어 공동체가 중요하다면, 그 이유가 궁금하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가정을 창조하셨으며 신약시대엔 교회를 세우셨다. 건강한 교회로 들어가야 하나님과 성경을 올바르게 배울 수 있다. 또한 각자 공동체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임재하신다. 교우들의 중보기도가 큰 힘이 된다. 삶에서 큰 환난을 당해 기도할 힘이 없을 때도,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으며, 이를 기억한다면 교회 공동체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교우들의 중보기도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교회 공동체를 매우 기뻐하신다. 못나거나 잘나거나 또는 열등감이나 우월감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바로 교회다.”

     

    -현대 교회에서 성도들은 일주일에 몇 번의 예배 시간에만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마음이 통하는 성도의 교제는 가능하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작은 교회는 교인의 모습 그대로가 드러난다. 단점 모두가 드러난다. 하나님과 목회자, 그리고 교인, 예배 순서를 대하는 태도가 온전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것이 아름답다. 그런 단점을 포용하시는 예수님을 작은 교회에서 교제하는 교우를 통해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를 경험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은 어떠하실지, 목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업적을 세우고 꼭대기로 올라가려는 우리 모습을 보며 아파하셨을 것 같다. 낮고 상처받은 사람들과 함께 울고 위로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런 예수님이 안 보이는 것 같지만, 주님의 사람을 통해 예수님은 일하신다.”

     

    -공동체를 통한 영성 훈련에 있어 제일 중시하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성경읽기다. 성경을 함께 모여 읽고 또 읽는다. 성도 가운데 ‘나는 왜 믿음이 안 좋을까’라며 고민하는 분도 계실 수 있다. 당연히 성경을 읽지 않으니까 그런 것이다. 성경에서 역사하신 예수님이 내 인생에서도 똑같이 역사하심을 믿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래야 성경 읽기에 대한 열정이 생긴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워낙 바빠서 그런지, 성도들의 성경 읽기 시간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목사님이 특별히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다면?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둘째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사랑은 어려워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섬김이란 무엇인가?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태복음 25장 40절)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섬기는 것이다. 사실 섬김을 하기 전에 나부터 예수님께 발을 내놓고 씻김을 받아야 타인의 발도 씻을 수 있다. 교회에서 주변 교우들에게 나의 죄를 고백하면서, 한 사람의 ‘괜찮아. 우리 모두 연약한 죄인이야’라며 토닥여 주는 행위로, 나와 너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위로 한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발 씻김을 경험할 수 있다면, 마태복음 25장 40절의 말씀은 추상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구체화될 수 있다.”

     

    -사역하면서 붙들고 있는 말씀이 있으시다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장 20절)다. 예수님을 만났어도 육체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편 73편 28절)이다.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께 다가서는 여정이다. 궁극의 기도란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구하는 것이다. 세상의 복을 구하는 기도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님을 향해가는 과정의 일부이지 목적은 될 수 없다. 아빠가 사주시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시기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아빠를 만나는 과정의 일부다. 결국 장난감보다 장난감을 주시는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의 마음을 아는 것이 자녀를 향한 아빠의 궁극적인 마음이 아닐까.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하나님은 당신을 전심으로 갈망하고 추구하는 신자의 기도를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이 때문에 예배는 매우 중요하다. 예배란 레위기처럼 주님께 받은 은혜가 크기에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행위다. 그래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는 것이 은혜다.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제목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죄인 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자격을 내세워 권리를 주장을 할 수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는 함께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죄인 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목회자로서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에 깊은 감사와 은혜를 느끼는 삶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우리가 죄인이라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도 살아있지 않는가? 그것이 은혜라고 생각한다.

     

    실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당하신 고통이란 3중적 고통이다. 당신이 창조하신 사람들로부터 받은 멸시·모욕 등 인격적 고통,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손목과 발이 못에 박히신 육체적 고통, 하나님께 버림당하신 영적인 고통이다. 그렇다. 나의 죄가 그렇게 참혹하구나. 나의 죄가 지옥에 이를 정도로 그렇게 끔찍하구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은 결단코 나를 구원하실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닫는다.”

     

    -목사님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이란?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는 불순종으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것이 최고의 불순종일까. 이런 불순종으로 선악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내게로 옮겨진 것이다. 인류의 불행이 여기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아내와 남편이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는 서로의 선악의 기준이 달라서일 것이다. 이처럼 인류 모두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생각에서 다툼이 비롯됐다고 본다.

     

    나의 불행도 사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신념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라, 인류의 숫자만큼 자신만의 선악의 기준이 늘어나니, 그 만큼 불행도 증식하는 것이다. 서로의 옳음에 갇혀 버리니,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기 위해 상대방은 틀려야 한다. 상대방을 틀리게 하려면 내 옮음이 관철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판단, 정죄, 갈등, 폭력 등 온갖 인류의 불행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선악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보시는 선악의 기준이란?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말하고 싶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뜻으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이웃을 둘째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기준 삼아서 하나님의 뜻의 큰 줄기대로 살다보면 개인의 소소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면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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